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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역경의 열매] 이에스더 (6) 대구 기도원 탄생 비화… 1억2000만원이 하루 만에
작성자 : 작성일시 : 2015-06-10

일본 후쿠오카한인교회 집회에 가서 기도원 부지 헌금을 응답받아온 이에스더 원장(왼쪽 네번째). 맨 오른쪽이 이성주 담임목사.

요나금식기도제단은 대구 도심에 생긴 기도원인 셈이었다. 성령께서 주시는 말씀은 날선 검이 되어 원근 각지에서 온 성도들의 심령을 쪼개고 파고들었다. 성령께서 전하고픈 말씀이 내 입술을 통해 선포되고 은혜를 입은 성도들에게 변화와 영적 각성이 있게 만들었다.

난치병이 낫는 역사들이 이어졌고 성도들뿐 아니라 목사님들도 찾아오게 되었다. 처음엔 성도들이 이곳에서 은혜를 받고 치유를 경험했다니 좀 이상한 곳이 아닌가 우려하며 검증차 찾아오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정규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나를 돕는 사위도 공군정훈장교 출신에 침례신학교에서 공부했다니 안심했다.

“기도제단이 교회와 다른 점은 교회가 영적병원이라면 기도제단은 응급실 같은 곳입니다. 급하게 하나님께 부르짖고 응답받을 때 기도로 부르짖는 이런 곳이 꼭 필요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드려지는 엄숙한 경배와 갈멜산상의 애끓는 기도가 다른 것과 같습니다.”

나의 이 말에 목사님들이 격려해 주시고 성도들까지 보내주시기도 했다. 난 이곳에서 만 6년간 하루도 쉬지 않고 집회를 인도했다. 지금 생각해도 대단한 지구력이라고 생각된다. 하나님께서 힘과 능력을 주셨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곳에서 많은 일이 일어났다. 오랜 불치병으로 고생하던 성도가 기도하다 깨끗함을 입었고 아기가 안 생겨 애타하던 부부가 기도로 쌍둥이를 임산하기도 했다. 몸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심한 류머티즘 관절염을 앓던 환자도 기도로 치유 받았다.

한번은 대구 근교 달성군의 한 산을 찾았다가 아름다운 풍경에 반해 감탄사를 연발했다. 큰 호수를 병풍처럼 둘러싼 산의 모습이 한 폭의 수채화 같았다. 이곳을 기도원 부지로 매입하고픈 열망이 가득했지만 금전적 여유가 없었다. 5000평을 사려고 하니 1989년 당시에 큰 금액인 1억5000만원이 필요했다. 난 믿음으로 계약서를 썼고 3개월 안에 잔금을 다 치르기로 했다. 계약금은 내가 가진 전부인 3000만원으로 치렀다.

난 오직 기도로 잔금을 마련케 해 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렸다. 밤낮으로 부르짖고 부르짖었지만 응답이 없었다. 자칫 계약금만 떼일 판이었다. 이 무렵 일본 구마모토기도원에서 집회인도 요청이 들어왔다. 당시 국방부에서 국제기독장교대회를 준비하던 사위에게 요나제단 집회를 맡기고 일본으로 향했다. 일본에서 하나님의 땅값 응답이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가 가득했다. 그런데 일본 전국 성회로 열린 이 집회가 성령의 풍성한 역사로 끝났지만 내 문제엔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실망하던 중 후쿠오카 한인교회를 담임하는 이성주 목사님이 이번 집회에서 큰 은혜를 받았다며 하루 만이라도 자신의 교회에서 집회를 인도해 달라고 요청했다.

후쿠오카로 이동해 마음이 답답한 상태에서 강단에 올랐다. 그러나 이 시간을 하나님이 예비하셨다는 감동이 오며 성령 충만한 시간이 이어졌다. 설교를 마치자 담임 목사님은 나의 대구 기도원 부지 계약사실을 성도들에게 알리며 “우리의 고국에 기도처가 이루어지는데 하나님은 지금 우리가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손으로 하십니다”라며 긴급 광고를 했다.

이날 헌금이 6000만원에 가까웠다. 그러자 목사님께서는 “지금 드려진 예물로는 이에스더 목사님께서 매입하려고 하는 땅값으로는 절대 부족합니다. 그렇다면 나머지는 S장로님께서 책임지시면 어떨까요?”

그 순간 S장로님도 “아멘.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시원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손길을 통해 하루 만의 반전으로 대구 기도원 부지 잔금을 치를 수 있었다. 나는 좋으신 하나님을 마음껏 찬양했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