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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이에스더 (5) 믿음의 딸-사위, 얼굴도 안보고 결혼 날짜 잡아
작성자 : 작성일시 : 2015-06-09

결혼식을 마치고 사위 장덕봉 중위와 딸이 폐백을 드리는 모습. 사위는 군인으로 근무하며 신학대학 및 대학원을 졸업해 목사가 된다.

 

결혼도 대물림을 하는 것인가. 내가 어머니의 기도로 목사와 결혼하게 된 것처럼 딸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 늠름한 공군사관학교 출신에 믿음 좋은 장덕봉 중위를 사위 삼고 싶어 서두르는 나의 모습이 예전의 엄마 모습 그대로였다. 기도해 보니 딸의 배우자감으로 장 중위를 하나님이 허락하셨다는 믿음이 왔다.

딸은 20대 초반이라 아직 소녀 같았고, 나도 곧 캐나다로 돌아가야 했으며, 장 중위도 미국으로 군사유학을 갈 예정이었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놓쳐버릴 것 같았다.

“장 중위님,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내 딸과 장 중위를 맺어주라는 응답을 받았어요. 함께 기도해 보십시다.”

장 중위는 딸을 한번 보지도 않고 내 말만 들은 채 기도해 보겠다고 하더니 나흘이 지난 후 자신도 응답을 받았다며 결혼을 승낙했다. 우리 집안의 가풍대로 딸도 사모가 되는 순간이었다.

이런 결혼이 또 있을까. 신앙으로 해석하지 않으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내 딸과 장 중위는 결혼식 날짜를 미리 정해 놓고 그 전날 처음 만났다. 다행히 딸이 사위를 만족해하는 눈치여서 마음을 놓았다.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주장하시는 결혼이라 모든 것이 물 흐르듯 자연스레 진행되었다.

하객들의 축의금으로 식사를 대접하고 남은 돈을 사위에게 주며 신혼여행비로 쓰라고 했다. 그런데 신혼여행을 뒤로 미루고 딸과 의논해 그 돈을 자신이 지휘하는 공군부대 성가대원 가운비로 사용하겠다고 해 기특했다. 딸은 사위의 성가대 연습이 늦게 끝나 신혼 첫날밤을 자취방에서 보냈다고 했다. 나는 주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위의 모습에 서운하기는커녕 더 많은 점수를 주었다. 캐나다로 돌아가야 하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결혼한 딸과 아직 도움을 줘야 하는 아이들을 보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캐나다에서는 왜 안 오느냐고 전화가 빗발쳤고 나를 데리러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가려고 하면 국내 부흥집회가 잡히곤 해 출국이 자꾸만 늦어졌다.

한번은 사위가 근무하는 대구의 공군부대 기독장교 모임에서 예배를 인도했다. 이날 하나님이 크게 역사해 주셔서 모두들 은혜를 받았고 매주 와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사위 입장도 있어 당분간이란 단서를 붙이고 예배를 인도했는데 아예 예배처소를 얻어 목회를 해줬으면 하는 눈치였다. 사위도 이렇게 말했다.

“이 목사님, 캐나다보다 한국 사역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장모님으로서가 아니라 목사님으로 모시고 옆에서 힘껏 도울 테니 국내 사역을 하시지요. 무엇보다 아내와 처남들이 장모님을 필요로 합니다.”

결국 난 캐나다 교인들에게 미안했지만 한국에 남기로 했다. 그리고 딸의 집과 가까운 교회에 터를 잡고 철야하며 기도의 포문을 열었다. 하나님께 내가 목회할 수 있는 공간을 주실 것을 간구했다. 그렇게 깊이 기도하는 가운데 “병원 앞으로 가라”는 응답을 받았다.

대구 파티마병원으로 가보니 건축 중인 새 건물이 있었다. 전세만 준다는데 사정해 50여평에 월세로 들어가기로 계약했다. 완공과 함께 요나금식기도제단이란 현판을 걸고 입주를 했다. 요나와 같은 신앙인이 주변에 너무나 많기에 금식하며 죄를 자복하고 신앙인으로 거듭나자는 의도였다.

집회를 시작하자마자 놀라운 성령의 은혜가 넘치기 시작했다. 신유의 기적이 일어난다는 소문이 나면서 매일 200여명의 성도가 문제를 안고 모여들었다. 저녁 10시 반부터 12시까지 1차 집회를 열고 밤 12시부터 새벽 4시까지 철야기도를 드렸다. 낮에는 주부들이 밤에는 직장인들이 모여 뜨겁게 기도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